보상과 애정

2021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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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 꽤 규모 있는 스타트업으로부터 오퍼를 받았다. 지금보다 높은 연봉과 적지 않은 스톡옵션, 내가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을 제안받았다. 그 덕에 우리 회사랑도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그러면서 이직하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보상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지금 일하고 있는 힐링페이퍼에 대한 애정을 알아차리고 키우는 기회가 됐다. (아, 참고로 오퍼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지 않았다. 내 일기가 단순히 더 큰 보상 때문에 쓰였다고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첨언한다)

보상

보상에는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감정적 가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에 이런 이야기 나온다. '연봉은 단순히 노동의 경제적 가치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감정의 가치이기도 하다. 인정, 존중,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며, 개개인을 회사의 목표에 강력하게 연결시킨다.'

나 또한 보상은 인정에 대한 지표이며, 회사가 구성원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행동 없이 말로만 보여주는 인정과 존중은 지속가능한 신뢰를 만들기 어려울뿐더러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을 납득시키기 위해 리더십의 리소스가 필요 이상으로 많이 들어간다.

또, 보상과 더불어 승진(승진은 단순히 포지션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확대라고 생각한다)도 인정의 가치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보상은 성과에 대한 인정이고, 승진은 잠재력에 대한 인정에 가깝게 느껴진다. 그러므로 회사는 구성원에게 인정과 존중을 보여줄 때 보상과 승진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어느 정도의 보상이 적정한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나 그렇듯 여전히 난제다.

힐링페이퍼에 대한 애정

힐링페이퍼를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애정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입사할 때만 해도 강남언니 프로덕트와 성형/시술 도메인에 대한 관심이 적어서 애정의 마음으로 오랜 기간 함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 채우고도 넘칠 정도로 마음 붙이고 있는 지점이 많아서 더 오랜 기간 함께할 것 같고, 그러고 싶다고 느꼈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마음은 팀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간 일을 해오며 쌓아왔던 냉소와 불신을 힐링페이퍼가 보여준 신뢰와 합리성 덕에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단단하고 지속가능한 조직문화와 훌륭한 동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얻은 것들을 지켜나가며 다른 누군가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과 고마움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가장 예기치 못했던 부분은 회사가 제시하는 비전과 하는 일에 대해 공감하는 마음이 커진 것이다. 처음에는 걱정될 정도로 관심이 안 갔다. 일을 하다 보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공급자 중심인, 이 미용 의료 시장에 대한 분노(이는 미용 의료 시장만의 상황은 아니지만 의료 시장 중에서도 미용 의료 시장이 심한 편인 것 같다)와 절실하게 혁신이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의미와 의욕을 키워줬다. 또 회사가 이 문제를 미용 의료 시장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 의료 시장의 문제로 바라보며 장기적으로는 전체 의료 시장의 혁신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도 동기부여에 한몫했다.

내가 이직을 하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 두 가지에 의한 것이었다. 보상과 애정이 각각 과락을 넘긴 상태에서 총합이 높은 선택지가 억울함을 남기지 않고 지속가능성을 만들어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이런 것들이 충족되어야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일을 잘 해내고 성과를 내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이편이 회사와 개인의 이기심이 맞물리는 지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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