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 기록을 멈추다

2021년 06월 23일

routine

내가 하는 루틴이 무엇이고, 각 루틴을 했는지 안했는지 기록하는 일을 멈추었다. 문득 현재에 집중하여 충만하게 사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해놓은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일이나 나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침에 스트레칭을 못하더라도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게 더 만족스러울 때가 있고, 저녁에 계획했던 공부를 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나에게 필요한 글을 쓰는 게 의미가 있을 때가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그간 알아차리지 못했다. 여태껏 루틴이 내 삶의 바텀라인을 지켜줬기 때문에 루틴의 우선순위가 상대적으로 더 낮을 때도 있음을 고려하지 못했다.

내가 루틴으로 하는 20여 가지의 일들은 분명 나에게 필요한 일이고 해냈을 때 즐거움과 자기 효능감을 준다. 하지만 좋은 만큼 반드시 해야 하는 일로 여기다 보니 압박감을 느끼고 여유를 빼앗기면서 꾸역꾸역 해내는 피곤한 일로 느껴지기 일쑤였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사실 기록 자체가 이 상황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처음에는 필요한 루틴을 습관으로 만드는데에 큰 동기부여가 됐다. 그런데 대부분의 루틴이 몸에 익은 지금의 나에게는 득보다는 실이 커졌을 뿐이다. 내가 기록할 때는 대체로 개선하기 위함이다 보니 기록을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기고,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빈 구멍이 생길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루틴 기록을 멈췄고, 매일매일 모든 루틴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줄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루틴의 수행율이 그리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슷했다. 여전히 아침에 눈을 떠서 침대를 정리하고,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쓴다. 심지어 루틴을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순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로 느끼면서 더 즐겁고 의미있게 해낸다. 반드시 루틴이 아닌 현재 나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일을 한다는 원칙의 우선순위가 높아지면서 루틴에 허덕이지 않으니 일상이 더 충만하고 여유로워졌다.

이 일기를 쓰는 지금도 원래라면 슬슬 퇴근을 하고 저녁 루틴을 하느라 다른 일을 하지 못했을 시간이다. 루틴보다 루틴에 대한 생각 정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를 쓰고 나서는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잠옷을 입은 채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 저녁 루틴을 하겠지. 이런 지금이 참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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