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2021년 11월 15일

routine
journey

최근 몇 주 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블로그에 업로드하는 일기뿐만 아니라 혼자서 쓰는 일기장에도 그랬다.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남자친구와 그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여태까지는 어떤 사건이나 선택이 생긴 후에는 일기를 쓰며 그 일을 매듭지었다.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이유와 과정을 거쳤는지, 그로인해 생긴 결과가 무엇인지 등을 정리했다. 삶이라는 긴 끈이 있다면 꽤나 촘촘한 간격으로 정리된 메모가 적힌 리본을 묶어나가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다르다. 결과와 원인을 속으로 정리하고 이에 대해 남자친구와 이야기 나누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대충 휘갈긴 포스팃을 잘 붙지도 않는 끈에 붙여놓은 느낌이다. 어쩌다 끈질기게 잘 붙여있는 포스팃들도 있지만, 대체로 끈이 흔들릴 때 힘없이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누군가가 요즘의 나 혹은 나의 생각에 대해 물어보면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거나, 떠오르는 생각을 답하더라도 마치 덜 요리된 음식을 내어놓은 것 같은 당혹감과 민망함이 차오른다. 접시를 내려놓자마자 모양새가 무너지는 요리처럼,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늘어났다.

매사를 다 기록하려는 강박에서 느끼는 피로의 반작용으로 지금의 상태에 이르른 것 같은데, 여기는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의 극단인 것 같다. 올바르게 선택하고 회고하며 산다는 느낌 없이 부딪히는 대로 살아내는 기분이다.

모든 사건과 선택에 대해 매듭 지을 필요는 없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 1) 한 번은 정리되어 언제라도 깔끔하고 일관된 답이 떠오를 필요가 있는 일이나 2) 나중에도 기억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는 시간을 투자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그간 거쳐온 여정과 지금 가지게 된 생각을 더 많이 애정하고 확신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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