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생일
2022년 01월 29일
구정 겸 아빠 생일이라 본가에 왔다. 몇 주 전부터 본가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아빠의 생일 선물은 무엇이어야 좋을지 고민했다. 주문 제작 케이크까지는 고민을 마쳤는데 그 이상의 무언가를 더 줘야하는지를 끝까지 결론내리지 못했다. 결국 본가에 다 도착해서야 내가 준비한 케이크만으로는 욕 먹을 것 같다는 압박감에 A4 용지를 잘라서 지폐만한 크기로 만든 다음 '₩300,000'을 적어서 주머니에 넣어뒀다.
내가 집에 도착한 뒤로 갑자기 거실에 나와서 앉아있는 아빠가 한참을 TV만 보다가 자기 생일 선물로 뭘 가져왔냐는 질문을 툭 꺼냈다. 내가 주방을 가리키며 저기에 있다고 말하자, 가소롭다는 말투로 '케이크?'라는 질문 아닌 질문이 돌아왔다. 예전 같았으면 기껏 뭘 준비해왔는데 꼭 그런 식으로 반응해야 하냐고 짜증을 냈을테지만 요즘은 다르다. 너스레를 떨며 특별히 아빠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준비해서 맞춤 제작한 케이크라고 답했다.
이번 아빠 생일 선물의 전략은 피식하는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어차피 무슨 선물을 줘도 좋은 소리를 못 들을테니 웃기기라도 해서 아빠 친구들한테 자랑할만한 거리를 준비하자고 생각했다. 그런 고민 끝에 나온 선물이 장수 막걸리 20개가 담긴 짝 모양의 케이크였다. 케이크를 꺼냈고 아빠가 픽 웃었던 거 같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겠다며 사진 한 장을 찍어갔다.
사진을 다 찍은 다음에는 초를 꽂고 노래를 부르며 아빠 생일을 축하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돈은 카카오톡으로 보내겠다고 말하며 아까 주머니에 넣어뒀던 30만 원 가상 화폐(?)를 아빠한테 건냈다. 아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받아가며 왜 자기 계좌로 안 쏘고 카카오톡으로 보내냐고 말했고, 나는 계좌가 편하면 계좌로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아빠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