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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을 돌아보며 -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Wonny (워니)
Wonny (워니)·2016년 12월 31일 01:00

독립을 시작한 이후 힘들지 않은 해는 없었기에 힘들었던 점들은 각설하고 한 해 동안 배웠던 점들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작년 2015년에 비하면 2016년은 주변의 좋은 분들 덕분에 눈물보다는 웃음으로 보냈다. 정말 힘들었던 작년의 고생을 발판삼아 한 단계 도약한 해이기도 하였다. 진정한 나, 정원희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던 해였으니 그보다 더한 성장이 어디 있으랴. 무엇을 느끼고 배웠는지 다섯 가지 정도 정리해보았다.

1. 돈, 나는 정말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돈이 많다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스스로 정말 놀랐던 부분이었는데 돈에 대한 태도가 많이 변한 해였다. 내가 20살이었을 때, 그때는 정말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가스비 걱정에 난방 한 번 제대로 못틀며 살았다. 그때부터 내 또래보다 비정상적으로 돈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돈으로 환산할 정도였으니 머릿속에는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궁리로 가득했다. 심할 때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조차 경제적인 가치가 있는지 따졌던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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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 남는 시간에 학교공부를 했다. 주경야독의 실천..

그런 돈에 대한 태도가 올해 7월,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본격적으로 외주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 바뀌었다. 여태 벌어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어떻게 벌었을까? 간단하다. 내 시간과 돈을 맞바꾸었다. 8월부터 11월까지는 외주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비교적 큰돈을 얻었으나 그 돈을 가지고 행복해하며 소비할 시간조차 잃었다. 애써 늘어난 통장 잔고를 보며 행복하다고 위안하며 버티다가 학기말쯤부터 스스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돈이 많은 삶보다 내 시간이 있는 삶을 원한다고. 그렇게 인정한 후부터는 오히려 돈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다니게 되더라. 이제는 틈틈이 하고 싶은 일을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소일거리 정도만 받아서 살기로 결심했다.

2. 노력, 나는 무언가를 노력하여 이룰 수 있는 사람인가?

중학생 때부터 회사에 다니기 전까지 나는 항상 자만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안 할 뿐이지 조금만 노력하면 언제든 전교 1등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사람이라 자신을 평가했었다. 그런 탓에 항상 적당히 노력해서 적당한 등수만 유지할 정도로 적당히 살아온 얄미운 학생이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 노력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기는 했지만, 몸이 따라주질 못했다. 노력하는 행위도 습관이더라.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고 노력도 해 본 사람이 노력할 수 있다고 느꼈다. 평생 치열한 노력을 해본 적 없는 내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노력 형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중간에는 스스로 노력하는 능력이란 게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여 좌절할 때도 있었다.

결국, 노력하는 힘을 길러야겠다고 판단했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중간에 부모님의 외압도 한몫했다.) 학교에 돌아와서 공부를 시작했다. 적당히 하는 벼락치기 말고 꾸준히 하는 공부에 도전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돌아온 학교인 만큼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학점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수학을 시작하면 교재의 앞부분인 집합과 행렬만 잘하는 타입의 학생이었던 내가, 올해 처음으로 데일리로 꾸준히 문제집을 풀어 한 권을 다 푸는 쾌거도 이루었다.

애초부터 근성이 없던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개근상 한 번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무결석을 해냈다! 대학교는 개근상이 없어 아쉬울 따름이었다.(대학생도 개근상 주세요.,) 수업도 꾸역꾸역 열심히 듣고, 복습도 제때제때 했다. 물론 기말고사쯤에 되어서는 뒷심이 부족하여 학기 초보다는 공부시간이 줄었지만 그래도 한 학기 동안 가장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좋은 성적도 얻을 수 있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지만 나도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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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었던 점수... 자랑 좀 하겠습니다! yeah!

3. 사람, 내 주변에 이렇게나 좋은 사람이 많았던 적이 있는가?

정말 감사하게도 올해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이전 회사 언니 소개를 통해 만난 남자친구부터, 셀폰 식구들, 앱개발 모임을 통해 만난 분들, 스타트업 식사는 하셨습니까 운영진을 하면서 만났던 분들, 마지막으로 협업하는 디자이너, 시크릿빌 팀들까지! 아직 꼬맹이 어른인 저를 좋게 봐주시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평소에 낯간지러운 말을 못해 말 나온 김에 고백하자면 내가 정말 좋아해요! 다들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다 기억하고 있고, 언젠간 내가 도움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원을 하나 적어보자면 내 30살의 생일날에는 주변의 좋은 분들을 다 초대해 맛있는 음식과 재밌는 파티를 통해 감사함을 전달하고 싶다. (그 파티에서 즉석 소개팅을 해보면 정말 재밌을 듯...)

4. 운동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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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운동 필라테스

중간에 허리 부상으로 한참 고생했을 때 도수치료를 포기하고 필라테스를 시작한게 내 운동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건강관리를 시작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 중 하나는 여자기 때문에 다른 남자 개발자들을 이길 수 있는 체력이 부족했다. 공부도 일도 기초 체력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거라는 것이 여러모로 큰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운동을 꾸준히 한 지 3개월 쯤에는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격렬하게 뛰고 있으면 세상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작년 우울증약까지 먹을 정도로 감정적으로 예민한 내가 정서적인 안정을 찾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좀 바쁜 일정을 핑계로 건강관리에 소홀해졌었는데 다음 달부터 다시 필라테스를 시작하기로 했다.

5.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

올해는 유난히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이 있었는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할머니의 장례식과 한 학기 동안의 철학 수업 때문이었다. 철학 수업에서는 여러 철학가의 죽음관에 대해 배우고 죽음에 관해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수업을 통해 나는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수 있었다. 특히 철학 수업의 마지막 시험 문제는 '내 미래의 죽음에 대해 상상해 보고, 철학적 입장과 함께 서술하시오.' 였고, 교수님이 시험 전에 공지해주시며 미리 고민해보라고 하셨다. 이 문제에 답을 적기 위해 시험기간에 다른 공부할 시간을 쪼개 꽤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답안을 작성해보았는데 스스로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짐할 겸 살짝 옮겨적어 보았다.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질문이지만, 살면서 큰 고민이 닥쳤을 때 해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질문이다. 당장 내일 죽는다고 가정하면 죽음에 대해 잊고 살아가던 일상에서 탈피해 진정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 어느 것인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죽음은 숨이 멎는 그 순간조차 지난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 죽음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루었던 의미 있는 행위들을 회상하고 미소 지으며 덤덤히 눈을 감을 수 있는 그런 죽음. 이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저 질문의 답을 따라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가치 있는 선택으로 채워나가야 한다.

이는 하이데거의 죽음관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비본래적인 삶을 벗어나 근원적인 세계를 개시해줄 가능성이라 하였다.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볼 수 있듯 죽음을 앞둔 사람은 삶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죽음을 앞둘 수는 없으므로 위에서 질문한 죽는다는 가정을 통해 그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행위 자체가 비본래적인 삶을 벗어나는 과정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게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죽음에서 오는 불안을 당당히 마주하며 한치의 후회도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행위들로 삶을 채워나갈 때 비로소 나의 진정한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선택이 닥칠때마다 이번 철학 수업의 마지막 시험 문제와 내가 쓴 답을 항상 떠올리며 의미있는 선택을 하리라 믿는다.

번외. 2017년 다짐

2016년 동안의 배움을 토대로 2017년에는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구체적이고 간결하게 작성해보았다.

  • 1주일에 3일 이상 운동하기
  • 2주일에 1권 이상 책 읽기
  • 1주일에 1개 이상 포스팅하기
  • 재밌는 프로젝트 2개 이상 참여하기
  • 개발 실력의 깊이를 위해 학부 공부 및 알고리즘 공부하기

2017년은 화르륵 불타기보다는 꾸준히 따뜻한 삶을 살고 싶다. 지켜보면서 이 목표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 같다 싶을 때 한 번씩 채찍질해주시면 약소하게 커피 한 잔이라도 대접해드리겠습니다.

새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올해처럼만 좋은 사람들과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건강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새해에는 행복으로 꽉꽉 찬 알찬 해가 되시길 빌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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