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함양하고 싶은 전문성
여태껏 나는 개발자로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 최근인 3년 전 이직에서 재밌어하고 나름 잘해왔던 리드의 역할을 포기하고 엔지니어 구성원으로 강남언니에 이직을 했다. 어쩌다 보니 수습 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강남언니에서 프론트엔드 챕터 리드가 되기는 했지만, 1년 반 정도 후에 결국 다시 리드를 그만두고 백엔드 엔지니어로 직무 전환을 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리드가 아닌 역할로 일하는 건 그리 재밌지 않았다. 나는 주어진 일만 잘 해내도 충분한 것보다는 넓은 시야에서 우리 팀이 일을 더 잘하게 만들거나, 문제를 정의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같이 일을 진행시키는 일 등을 훨씬 재밌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개발 중에서도 피처 개발을 하는 것보다 도구를 개발하거나 생산성 높은 개발 환경이나 인프라 구축하는 걸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시기에서는 그러한 성과나 영향력을 만드는 것보다는 팀에 속한 개발자로서 깊이 있는 기술 역량을 쌓는 게 옳다는 생각이 컸기에 눈길이 가는 일에 마음을 닫고 전문성을 쌓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수련하는 마음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개발 실력은 조금씩 쌓여가는 느낌이었지만 여전히 엄청 재밌지는 않았다.
그러다 최근에 [[희열님]]이 워니님이 생각하는 전문성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했다. 그 질문을 듣자마자 살짝 멍해졌었다. 왜냐하면 그간 전문성을 쫓는다고 해왔으나 여태까지 한 번도 내가 쌓고자 하는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해본 적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막연하게 뭔가 기술적 질문에 척척 대답을 하는 테키한 개발자...? 정도의 생각을 해왔다. 그래서 그 어떤 회사의 기술 면접이나 코딩 테스트도 다 쉽게 통과하고 딱 봐도 멋있고 실력 있어 보이는 기술 관련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무언가 정도를 그려왔던 거 같다.
그렇게 답했더니 희열님이 이어서 그러한 전문성을 쌓고 나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질문하셨다. 그 질문에서도 망치로 머리를 맞는 느낌이었다. 내가 그런 전문성을 쌓고 나면 바로 내팽개칠 거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전문성이 필요해서 원했다기보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개발자를 멋있게 생각하니까 한번 찍어보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마치 별다른 이유 없이 '대기업 타이틀 한 번 찍어야 해'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쌓고 싶은 전문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해보기로 했다. 나는 비즈니스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필요로 하는 제품을 빠르고 적절하게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 비즈니스가 기술적으로 특화되어 있거나 안정적으로 규모가 커져서 대규모 시스템으로 발전하는 시점에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기술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IT 서비스를 기반한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사업적으로 잘되는 서비스를 빠르게 만들어내고 싶은 욕망이 크지, 기술적으로 멋진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은 적다. 가령 업계 사람들이 많이 쓰고 유명한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가? 아니면 개발자들이 기술적으로 훌륭하다고 혀를 내두르지만 그리 유명하지 않은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가?를 고민하면 너무나 당연하고 강렬하게 전자다.
그러므로 나는 기술적으로 계속 파고들어서 점점 어려운 난이도의 기술적 문제를 푸는 것보다 다양한 경험 개발을 쌓으며 점점 더 빠르고 적절한 기술 수준의 제품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
이를 위해서는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는 여러 도구를 알고 있어야 하고 이러한 도구를 다양하게 사용해본 경험을을 쌓는 게 유리하다. 또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배우는 능력과 비즈니스 요구사항을 잘 정의하고 이 요구사항을 적절한 기술 수준으로 구현해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서만 읽기 보다는 손을 많이 더렵혀야 한다. 더 많이 코딩하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경험을 쌓아야 한다. 비슷한 문제를 만났을 때 더 빠르게 해결할 수 있도록 문제의 근본 원인을 잘 파악해두고 다음에 더 잘 해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깊이 파는 것을 더 중시해왔는데 이제는 실용성에 중심을 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리더십과 매니징 관련한 경험도 필요하겠지만 그 경험은 이미 충분히 많이했기에 당분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좀 더 제품을 잘 만드는 경험에 집중하여 능력을 쌓아보는 게 균형이 맞는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그간 맞지도, 원하지도 않는 전문성을 쌓는다고 재미없는 시기를 보낸 게 조금은 아쉬웠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재미있게 배워나가겠구나 하는 기대가 된다. 두근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