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나를 기록하기
독서모임 스타트업 트레바리에서 테크 리더로 일하기#4
야심 차게 시작한 '트레바리 막내이자 CTO로 일하기' 시리즈를 달랑 3편밖에 쓰지 못했다. 트레바리에서 일하는 즐겁고 멋진 순간들을 기록해두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조회수가 네 자리가 넘어가면서부터 부담감이 묵직하게 자리 잡았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멋들어진 결과를 보여주는 글이나, 일하면서 얻은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공유하는 글이라도 써야만 할 것 같았다. 글을 쓰려고 몇 글자를 끄적이기 시작하면 곧바로 한참은 부족하다는 생각이 따라붙었다. 그러다 보니 글 하나를 쓰다 말고 포기해버리기 일쑤였다.
트레바리에서 일한다는 건 매일같이 부족한 나를 발견하고 채워가는 과정이다. 성장과 변화가 빠른 회사인 덕에 다른 곳보다 잦게 처음을 맞닥뜨리고, 계속해서 도전해야 한다. 여태까지 배운 것보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이 남음을 알고,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배우는 과정이다. 이렇게 부족함을 발견해나가는 과정에 있으면서 완벽한 결과를 보여주려는 글을 쓰려 하니 완성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덕분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던 목적까지 놓쳐버렸다. 펜을 쥐었다 놨다 하는 동안 무척 즐거운 일들도 많았고, 좌절했던 일들도 있었지만 단 하나도 남겨두지 못했다. 또다시 아깝게 흘려보냈다.
함께 일하는 크루들은 완벽한 홈런만 치려고 하기보다 더 많은 타석에 서려는 사람들이다. 종종 나오는 파울볼을 숨기기보다는 왜 홈런을 치지 못했는지를 공유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한다. 영훈님은 최근 TF 세미나에서 근래의 자신의 의사결정들이 행동경제학에 따라 단기의 문제만 바라본 덜 합리적인 행동들이 많았던 것 같다며 고백했다. 그 모습에서 완벽하지 못한 영훈님이 아닌 부족함을 인정하고 개선하는 영훈님만 보였다. 그리고 그게 진짜 멋있다고 느꼈다.
잠시나마 있지도 않은 완벽한 나를 보여주려는 욕심 때문에 중요한 것을 놓쳤음을 깨달았다. 가끔 나타나 잘난체하며 요란을 떨다 사라지는 사람보다, 매일같이 묵묵하게 자신의 타석에 서는 사람이 멋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거창한 글보다는 솔직하게 부족한 나를 담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요즘의 나는 기존의 트레바리 홈페이지 버리고 새로운 홈페이지를 런칭하기 위해 리라이팅 작업을 하고 있다. 더 좋은 성능을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배워가며 일을 하고 있으며, 쏟아지는 배움 사이에서 새로운 부족함을 발견하는 중이다. 어제는 한 가지 일에만 몰입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고, 오늘은 어려운 글에서 헤매는 나를 발견했다. 내일은 또 다른 새로운 부족함을 발견할 예정이다. 부족함이 많지만 부족함을 메꾸려고 노력하는 나를 쓰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