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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돌아보며 - 변화와 독립, 그리고 감사의 해

나는 2020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Wonny (워니)
Wonny (워니)·2020년 12월 29일 08:42

올해는 유난히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사실이 시원섭섭하다. 이번 해는 애정하고 의지했던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혼자 서는 연습을 하는 독립의 시기였다. 한 편으로는 이별한 것만큼이나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만남이 가득한 시기기도 했다.

삶과 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해였고, 내면의 변화가 가장 큰 해였다. 그러면서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다는 말을 일기장에 빼곡히 채운 날들이기도 했다. 이런 올해가 끝나가는 게 참으로 아쉽지만 이런 올해를 경험한 내가 만나게 될 내년이 너무나 설레고 기다려지기도 한다. 이러한 마음을 기억하고자 2020년을 돌아보며 글을 쓴다.

명상 🧘🏻‍♀️

올해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준 일은 명상이다. 운동을 통해 건강한 몸을 만들고 다치지 않게 몸 쓰는 법을 배웠듯 명상을 통해 단단한 마음을 만들고 상처 나지 않게 마음 쓰는 법을 배웠다. 지금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아차리고 판단 없이 받아들이며 불편한 감정에도 비교적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됐다.

외부 상황이 흔들려도 내 중심을 묵직하게 세우는 법을 연습했으며 혹여 무너지더라도 좌절하는 대신 다시 시작하는 습관을 길렀다. 다른 사람의 인정과 돌봄을 갈구하지 않고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돌보기 시작했다. 또 스스로에게 야박하여 툭하면 자신을 평가하며 질책하는 일을 멈추고 부족한 모습도 안아주며 귀여워해 주기 시작했다.

명상을 추천해줬던 선재님과 일 년간 꾸준히 명상하게 해줬던 왈이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명상을 통해 변화했던 경험을 다른 사람들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 또한 사람들의 일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프로덕트를 만들자고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다.

우울증 🙌

올해 가장 기쁜 소식은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다. 11월에 우울증이 재발하여 가게 된 새로운 신경정신과에서 두 가지 희망적인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장기적인 치료를 통해 우울증을 완전히 치료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고, 두 번째는 나에게 너무나 효과적인 항우울제를 찾은 것이다.

사실 20대 초반부터 우울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그리 기대하지 않았다. 'Whatever does not destroy me makes me stronger'라는 니체의 말을 위안 삼아 재발성 우울장애를 일종의 만성질환으로 생각하며 내 정체성 중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살 수 있는 법을 익혀왔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호르몬 불균형을 잡는 여러 시도를 해보자는 의사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우울증을 재발시키는 기저를 뿌리 뽑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선물이었다. 설사 완치가 되지 않더라도 차도를 보고 있기에 만족스럽다.

또 여태까지는 세로토닌 제제의 항우울제만 먹다가 처음으로 도파민 제제의 항우울제를 먹게 되었는데 이 약이 정말 잘 맞았다. 내 우울증의 증상은 주로 무기력과 충동이라 무엇을 시작하거나 인내할 때 남들보다 더 많은 의지를 필요로 하고 의지의 지속기간이 짧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 약을 먹기 시작한 뒤로는 하고자 하는 일을 빠르게 시작하고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게 되었으며 과식 같은 충동적인 행동이 줄었다. 체감상 집중력과 생산성이 1.5배 이상 높아졌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루에 16시간 넘게 코딩도 하고 며칠 동안 원 없이 공부해보기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 가라앉는 일이 덜 생겼고 모든 일에 의지를 덜 쓰게 되니 피로도도 낮아져서 잠도 줄었다.

여태껏 항우울제는 감정의 바텀라인을 지켜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와 진짜 이런 삶이 있다니' 싶을 정도로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수월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 🙈

올해 가장 신선한(?)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며 쫓아다닌 일이다. 그간 연애한 짬(?)이 있으니 능숙할 거라 예상했지만 8개월 내내 '나 진짜 왜 이러지?!' 싶은 순간만 있었던 것 같다. 뭐든지 서툴렀던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분 관련된 일이면 툭하면 조급해져서 급발진하거나 고장 나서 나답지 못하게 행동할 때가 참 많았다.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애정하기까지 꽤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편인데 그분은 첫 만남 때부터 호기심이 생겨서 내가 먼저 다시 만나자고 연락했다. 이렇게 막 설레하며 허둥대본 적도 처음이었다. 만나기 전에 괜히 두근거리고 긴장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혼자 어이없어할 때도 있었고 그분이 시큰둥해 보이면 한참 시무룩해 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마음을 좋아하는 만큼 표현하자!'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호감 표현을 했지만 결국 잘 안됐다. (힝..) 처음 차였을 때는 타이밍이 안 맞아서 편안하게 대화 한 번 제대로 못 해본 탓이라고 합리화하며(ㅋㅋㅋ) 여러모로 노력해봤지만 상대가 마음이 없기에 타이밍이 안 맞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또 그분이 나중을 기약하며 약속했던 것들을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우선순위에 없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친구로 지내면 되지 뭐!' 했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안됐다. 친구라기에는 편하게 대하기도 어렵고 내가 놓으면 그대로 멀어질 것 같은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러다 11월쯤 되었을 때 연락하는 게 눈치 없이 구는 건가 싶은 순간들이 있었고 때마침 그쯤부터 여러 이유로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졌기도 해서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힝..2)

그래도 그분이 이것저것 배려해주시기도 했고 살면서 이런 감정을 느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위로중 여전히 매우 아쉽고 속상하지만 다른 사람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안 되는 거면 지금은 인연이 아닌갑다.. 하면서 마음을 접느라 진을 빼고 있다.

딥 워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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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명상이 마음에 큰 변화를 줬다면 행동에 큰 변화를 준 것은 칼 뉴포트의 <딥 워크>라는 책이다. 몇 번씩 읽으며 구절구절 몸에 새겼다. 목적의식을 뚜렷이 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몰입하고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가장 큰 수확은 몰입하는 방법보다 몰입을 통해 성과 내는 것의 즐거움을 알게 된 점이다.

자연스럽게 하루에 수십번씩 들락날락했던 SNS를 일주일에 서너 번도 접속하지 않게 되었고, 일주일에 4-5개씩 있던 약속이 1개 이내로 줄었다. 욕심쟁이에 거절을 잘 못 하는 사람이라 대부분의 제안을 마다하지 않았던 내가 출판이나 강의, 발표 등을 다 거절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전보다 삶에서 진정으로 이뤄내고 싶은 일에 집중하고 있다.

트레바리 퇴사 📙

올해 가장 큰 결정은 트레바리와의 작별이다. 5년 같은 2년 반을 보냈다. 퇴사라는 결정을 내린 순간에는 정말 많이 울었다. 여러모로 남아있을 이유도 퇴사할 이유도 참 많은 트레바리였다. 초기부터 함께 그려왔던 앞날에 내가 빠지게 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래도 퇴사를 한 덕에 한 걸음 떨어져서 지난 트레바리에서의 나를 돌아보며 배운 게 많았기에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결정을 내렸다고 결론지었다. 분에 넘치게 멋진 분들과 함께했고 수많은 도전을 해가며 전에 없던 배움과 성장을 얻었으며 시도 때도 없이 울고 웃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 구석구석에는 트레바리가 많이 스며들어있을 것이다.

힐링페이퍼 입사 🧚🏻‍♀️

올해 가장 잘했다 싶은 결정은 힐링페이퍼에 입사한 일이다. 사실 힐링페이퍼 입사 결정은 주변의 여러 도움으로 가능했기에 제일 감사한 결정이기도 하다. 기대 이상으로 이상적인 팀을 만나서 하루하루가 즐거움과 배움으로 가득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힐링페이퍼에서는 책에서만 봤던 이상적인 문화들을 실제로 경험하며 이전의 배움을 더 깊게 익히고 있다. 이전에는 함께 해야 함을 배웠다면 여기서는 함께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다. 이전에는 규칙과 패널티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여기서는 신뢰와 재미로 더 크고 긍정적인 움직임이 만들어지는 걸 본다. 집착에 가까운 장기적인 결정과 높은 기준에 대한 추구가 이상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냄을 실감하고 있다.

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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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으로 전셋집으로 이사했다. 회사에 1억 무이자 전세 대출을 지원해주는 복지가 생겨서(저희 개발자 채용합니다) 경제적인 부담을 덜면서도 1) 걸어서 회사를 갈 수 있는 위치에 있고 2) 친구들을 초대할 수 있는 거실이 있으며 3) 깔끔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20살부터 쭉 혼자 살면서 항상 월세 먹는 하마로만 여기며 단출하게 살다가 큰맘 먹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들로 채워봤다. 덕분에 가만히 있어도 즐겁고 편안해지는 공간이 되었다. 이 집이 요즘 내가 가장 애정하는 것이다.

루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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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푸시업을 무릎 안대고 10개 넘게 한다!

올해 내 중심이 되어준 것은 루틴이다. 아침에 침대 정리를 하며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한 후 일기를 쓰며 하루를 시작한다. 출근 전에 시간이 남으면 공부를 한다. 퇴근 후에는 주 2-3회 정도 운동을 하고 자기 전에는 하루를 회고하며 일기를 쓰고 책을 읽다가 잔다. 루틴을 지켜나가며 조금씩 내가 원하는 나에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부터는 일기 쓰는 방식을 라이더 캐롤의 <불렛저널>과 크리스티나 워드케의 <구글이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 OKR>을 많이 참고했는데 일 년 동안 나에게 맞게 조금씩 개선했더니 제법 좋은 툴로 발전했다. 자연스럽게 한 달 단위의 OKR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일주일, 하루 단위의 목표를 설정하고 회고하게 되었다.

엔지니어링 👩🏼‍💻

올해 가장 아쉬운 점은 엔지니어링에 집중하지 못한 일이다. 엔지니어링 역량을 쌓기 위해 더 좋은 조건의 오퍼들을 마다하고 엔지니어로 입사했는데 결국 또 데이터팀의 PO 역할을 겸하게 되었다. 엔지니어로만 일해보는 게 처음이라 그런지 웹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로서 어떻게 회사에 임팩트있는 기여를 할지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그래도 연말쯤부터는 웹 개발의 중요도가 높아지기도 했고, 웹 프론트엔드 챕터의 리드로서 여러 피드백을 받으며 뭘 해야 할지 조금씩 감을 찾게 됐다. 어쩌면 처음부터 빠르게 기여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조바심이 났던 것 같기도 하다. 내년에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엔지니어링에도 집중하고자 한다.

데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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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동안 사용하는 툴

올해 가장 많은 성과를 만든 것은 데이터를 활용하는 역량이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힐링페이퍼에서도 데이터팀 PO 역할을 맡고 있고, 입사 전에도 두어 군데 스타트업을 도와서 데이터 인프라와 데이터 드리븐하게 일하는 방식을 다져나가며 회사의 주요 지표를 250% 이상 성장시키는 경험을 했다.

환경이 잘 갖추어지지 않은 팀에서 데이터를 활용하여 일하기 위해서는 엔지니어링+데이터+커뮤니케이션(+a: 비즈니스 이해도, 문서화 등) 역량이 복합적으로 필요한데 그간 여러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일은 다 하고 본 덕에 데이터를 활용한 일종의 컨설턴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데이터가 여러모로 훌륭한 forcing function이 되어주고 있다.

즐거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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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점은 스스로를 돌보며 어떤 걸 즐겁고 편안해하는지를 알아간 점이다. 여행을 엄청난 사치라고 생각하는 내가 혼자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감각하는 일의 재미를 알게 되어 맛있는 와인과 차도 많이 맛봤다. 또 좋아하는 스피커로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쉴 줄도 알게 됐고 본격적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요리에 재미도 붙였다!

감사함 🙇‍♀️

올해 회고는 무엇보다 감사함으로 마무리 짓고 싶다. 일 년 치 일기를 돌아보니 참 많은 사람에게 마음과 애정을 받으며 지낸 일 년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기억에 남는 배움을 선물해주었고 대부분의 날을 웃으며 보내게 해줬다. 힘든 시기에는 함께 으쌰으쌰 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일기 구석구석에 감사한 일투성이다.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는 2020년을 뒤로하고 2021년을 맞이하려 한다. 내년에는 이런 감사한 마음을 더 자주 전하고, 나 또한 받아왔던 마음이나 웃음을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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